유난히 추운 올겨울, 학교 운동장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활기차게 뛰어노는 아이들은 없고 꽁꽁 언 축구 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학생들은 몸을 꼬며 지루해하지만 영하 10도 안팎의 운동장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 봄방학을 며칠 앞둔 시기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 모두 힘든 시간이다. 교과서 진도는 이미 완료됐고 성적처리도 모두 끝나 시간이 남아돈다는 말이 딱 맞는 시기다. 교사들이 기획했던 프로그램도 거의 완료됐고 관련 예산정산 보고서도 모두 제출됐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
“어떻게 해야 대학에 갈 수 있어요? 아니,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교사들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우리나라 학생, 학부모의 최고의 관심사 중 하나이고 빈번하게 들어오는 상담 내용이기도 하다. 단순한 답을 해주기에는 뭔가 아쉽고, 정확한 답을 해주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어렵고, 답하지 않고 외면하기에는 너무 절실한 주제다. 교사들이 흔하게 답하는 내용은 “목표를 분명히 하고, 대학이 요구하는 중점 선발 내용에 맞춰 준비하고, 수능을 위해 핵심을 정리하여 집중 학습하라”이지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대학마다
과학수업이 시작됐지만 철이와 민이(가명)가 과학실에 오지 않았다. 학생부에 불려갔다고 한다. 학급 회장이면서 평소 반듯한 행동을 하던 철이와 밝고 착한 민이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아이들에게 물어봤더니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들려왔다. 두 학생이 급경사인 하수구에서 썰매를 타려다가 걸렸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산의 경사를 끼고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2층 현관으로 나가면 1층으로 이어지는 경사가 있다. 경사지만 나무와 풀이 자라나 있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옆 얼어붙은 경사진 하수구를 아이들이 타고 내려온다면 얘
우리 학교의 자투리 공간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텃밭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유기농 채소를 키우는 곳이다. 올해는 유난히 텃밭 농사가 풍년이었다. 1학기에는 상추, 케일, 치커리 등 싱싱한 쌈채소를 풍성하게 수확했고, 2학기에는 배추 70포기를 수확했다.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한약재 찌꺼기를 썩혀 넣어주기도 하고 잡초도 제거해주며 가꾼 결과였다.지난 봄, 우리는 텃밭 상자에 있던 묵은 흙들을 영양분이 풍부한 상토로 교환했다. 그리고 작은 쌈채소 모종을 심었다.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텃밭 주변을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철이(가명)는 앞으로 하루만 더 결석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철이는 오늘도 출석부에 ‘수업 1시간’이 기록되자 사라졌다. 철이는 1시간만 수업에 참가해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철이의 불규칙한 출석은 2년이 넘었다. 중학교 1학년 초에는 상습적으로 무단지각을 하는 정도였지만 점점 행동이 무절제해졌다. 2학년 때에는 지각하고 오전에 한두 시간 수업받다가 무단결과(缺課)한 후 오후에 무단조퇴를 해버리는 날이 반복되었다. 하루에 지각, 결과, 조퇴가 겹쳤을 때 학생에게 가장 유
우리 학교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구부와 태권도부가 있다. 그곳에서 많은 학생 선수들이 전문 스포츠인을 꿈꾸며 멋진 미래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도 우수한 학생선수 육성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다 해왔다.교육을 논할 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운동부에는 그 말이 가끔 사치로 여겨진다. 학생들의 대회 결과는 상위학교 입학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선수생활 내내 평가기준으로 따라붙는다. 또 학생선수들은 학교의 명예를 걸고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학생이니 학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과거 학생선수
중3 철이(가명)는 기초학력부진 학생이다. 수업시간에 대부분 잠을 자거나 주변 친구들과 떠들며 보낸다. 공부 자체가 무척 힘들고 재미없다. 책도 떠듬거리며 겨우 읽기 때문에 선생님도 철이를 배려해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도록 하지 않는다. 철이는 수업의 그 무엇에도 흥미를 못 느낀다. 그저 병풍처럼 무력하게 교실에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지각과 결석이 잦다. 그래도 정기고사는 꼭 봐야 한다는 습득된 기억 때문에 시험 날은 꼭 온다. 마지못해 한 번호로 쭉 내려쓰고 시험시간 내내 잔다.그래도 철이는 옆반 기초학력부진 학생 민이(가명)보다
교사생활 31년 차, 나에게는 멋지게 성장한 제자가 여럿 있다. 그들의 성장 스토리는 후배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온다. 며칠 전 나는 한 제자에게 전화해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락하기에 앞서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안 할 건데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기쁜 마음으로 후배들 앞에 서겠습니다.”그 제자는 학창 시절 매력적인 학생이었다. 학급회장과 전교회장을 지낸 모범생이었기에 그의 얘기는 의아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남들이 가
‘독도야 기다려! 내가, 꼭! 너에게 갈게~’.몇 주 전 학교 복도에 학생들의 독도 프로젝트 산출물을 전시했다. 훌륭한 작품들 사이에서 이 소박한 글귀는 어떤 메시지보다 크게 와 닿았고 형용할 수 없는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를 사랑합시다’라는 결연한 글귀보다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고 마음 깊이 들어왔다.우리 학교는 매년 독도주간을 운영한다. 올해에는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을 위해 과학·기술·역사·사회·국어·영어 교과의 교사들이 공조하여 통합수업을 진행했다. 각 교과 교사들은 교과 특성에 맞게 독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5월, 신나고 재미있는 5월이다! 학교는 5월이 가장 행복하다.4월 말 1차 마지막 지필평가가 끝난 순간 아이들은 환호성으로 해방감을 표현했다. 교사들도 그랬다. 우리는 모두 3, 4월 열심히 공부했고 가르쳤다. 5월은 다양한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나눔과 통합의 수업과 행사들이 이어진다. 학교는 늘 바쁘지만 특히 5월은 즐겁게 바쁘다.5월 첫째 주 우리 학교 3학년은 일일체험학습으로 남산을 올랐다. 최근 체험학습은 대부분 체험관 방문이 위주였으나 이번에는 도시락을 싸서 남산을 오르는, 전통 방식의 소풍을 가기로 했
32년째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들과 더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데 7년밖에 남지 않아 아쉽다. 학교 생활에서 교사의 역할은 막대하다. 어찌 보면 부모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대화하고 함께 보내면서 학생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지난 경력과 추억을 돌이켜보며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첫째, 교사는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일부의 교육학자들은 교사에게는 깊이 있는 지식보다 폭넓은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의한다.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은 인터넷 전문 사이트가 더 많이 알
‘콩나무 교실’이라는 용어를 기억하시는지. 좁은 교실에서 많은 학생이 빽빽하게 앉아 수업받던 모습을 콩나물 시루에 빗댄 표현이다. 1970년경 흔하게 쓰이던 이 용어는 이제 쓸 일이 없을 듯하다. 학령인구가 계속 감소하면서 한 교실에 스무 명 남짓한 학생이 배정되고 이곳저곳에 소규모 학교도 들어서고 있다. 교실당 학생 수 규모만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학생 수당 배정되는 예산 방식이나 학생 인원당 배정되는 교사 인원에 있다. 특히 우리 학교처럼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교사 수급에서 발생하는 문제해결 방안을 찾지 못해 심각
세상의 많은 일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순환하지만 학교의 학기 순환은 특히 그렇다. 신학기가 되면 새로운 학급이 형성되고 교육청으로부터 허가받은 교육과정의 틀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타종과 함께 규칙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장장 12년 동안 학생들은 이 순환고리를 따라가야 한다. 더욱이 교사는 20대의 첫 부임부터 62세 정년퇴임까지 매해 변화를 꿈꾸지만 쳇바퀴 속에서 교육의 길을 따라간다.그래서일까? 학생은 때때로 일탈을 꿈꾸고, 교사는 어떤 시점에서 권태기를 느끼고 힘들어한다. 배부른
아침 9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담임교사들은 출석부를 챙겨 들고 교실로 향한다. 예쁜 제자들을 챙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힘차게 교실 문을 열고 인사한다. “얘들아 안녕?”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실 형광등도 켜지 않은 채 각자 휴대폰 게임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느라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온 줄도 모른다. 나는 교실 형광등을 급히 켜며 “얘들아! 휴대폰 꺼야지!” 하고 크게 말했다. 그러나 그 소리 역시 교실 천장으로 메아리가 되어 흩어졌다. 이번엔 교탁을 두드리며 “
촛불시위가 끝없이 이어지는 요즘 교무실은 스산하고 우울하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건 학교에서는 여전히 어김없이 일상적이지만 중요한 일과들이 진행된다. 교무실에서 교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수업종이 울리면 교실로 향한다. 무거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교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업에 성실히 임한다.때로는 아이들의 관심사와 소소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위 현장에 다녀왔다며 흥분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이런 화제에 직면하면 교사들은 곤란할 때가 많다. 여러 가지 상황과 교육자적
1990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을 제외한 아내, 딸, 아들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피 묻은 칼이 술에 취해 잠든 남편 곁에서 발견되어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실상은 아내가 저지르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자신의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던 남편의 오해로 인해 부도덕한 행위를 끝없이 의심받던 아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이런 사건은 과학 과목 ‘유전’ 단원 중 혈액형 수업의 소재로 이용된다. 십수년 전 어느 날, 과학실에서 혈액형 실험 수업이 끝나고 A군이 주저하며 다가왔다. “선생님! 제가 우리 엄마와 아빠
교육청에서 학교에 내려오는 새로운 교육 지침, 참 다양하고 끝도 없다. 올해 인성교육을 시행하라는 지침이 법으로 만들어져 내려왔을 때에도 그랬다. 많은 교사는 “이건 또 뭐지?”라는 반응이었다. 교사들은 일부 학생이 사회 통념을 벗어나 지도가 불가능해진 순간, 법을 정해서라도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종종 생각했지만 막상 법으로 정해 내려오니 난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교육은 획일적 교육을 낳고,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 형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한다.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이벤트 형태로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학교에서
남자 중학교에서 쉬는 시간은 즐겁기의 끝장판이다. 종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교실이나 복도 바닥을 엉켜서 뒹굴어 다닌다. ‘저렇게 노는 것이 그리 재미있을까?’ 생각하다가도 해맑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녀석들이 무슨 생각이나 있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저마다의 뚜렷한 꿈이 있다. 웬만한 유명 래퍼 뺨치는 실력을 지닌 우리 반 동준이는 작곡가가 되겠다고 하고, 발표 능력이 뛰어난 태민이는 감염학자가 되고 싶어한다. 역사가 가장 재미있다며 역사과 교
1학기 평가가 끝난 교실은 마치 전투를 끝낸 허무한 전쟁터 같고 뙤약볕 아래 늘어진 나무그늘 같다. 학생들은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는 한편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도 한다. 어떤 학생들은 목표를 잃고 왜 학교를 나와야 하는지 의구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은 선생님에게 놀자고 떼쓰는가 하면, 지루해하며 잠들어 버리는 학생도 있다.반면 교사들은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한다. 학기말의 성적 처리, 생활기록부 입력, 개별 업무 정리 등 쌓인 업무로 인한 시간과의 전쟁이다. 학생, 교사는 모두 ‘며칠만 버티면 여름방학이다’는 생각으로 근근